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1948년 5월에 완성
2018년 장현주 옮김
서울:새움 출판사
세상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인간의 복수일까요? 어디에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있을까요? 하지만, 어쨌거나, 강하고, 엄격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여기며 지금까지 살아왔으나, 호리키에게 그런 말을 듣고 문득
"세상이란 것은 자네가 아닐까?"
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것이 싫어서, 말을 삼켰습니다.
'그건 세상이 용서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잖아?'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세상이 아니야. 너잖아.'
'머지않아 세상에게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야. 매장하는 것은 너잖아?'
그대는, 그대 개인의 무서움, 괴기스러움, 능글맞음, 요망함을 알라! 등. 여러 말이 가슴속에서 오갔지만 저는 그저 얼굴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식은땀이 나는군. 식은땀."
이라고 말하고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때 이래,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 아닌가'라는 이상적인 관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pp.107-108)
저는 세상에 대해서, 서서히 경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이라는 곳은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지금까지 저의 공포감이란, 봄바람에는 백일해의 병균이 수십만, 공중목욕탕에는 눈을 멀게하는 병균이 수십만, 이발소에는 탈모를 일으키는 병균이 수십만, 전차 손잡이에는 옴벌레가 우글우글, 또는 생선회, 설구워진 소고기 돼지고기에는 촌충, 디스토마 등의 알이 반드시 숨어 있고, 또,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으로 작은 유리 파편이 들어가, 그 파편이 체내를 돌아다니다가 눈동자를 찔러 실명시키는 일도 있다고 하는 말하자면 '과학의 미신'에 위협당하고 있는 꼴이었습니다. 수십만의 병균이 떠나닌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분명 정확한 사실일 것입니다. 완전히 묵살하면, 그것은 저와 조금의 관련도 없어져 즉시 사라질 '과학의 유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저는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도시락에 먹다 남긴 밥풀 세 톨, 천만 명이 하루에 세 톨씩 남겨도 이미 그것은 쌀 몇 가마니를 낭비한 것이 된다, 라든가, 혹은 하루에 코 푸는 휴지 한 장 씩을 천만 명이 절약한다면, 어느 정도의 펄르가 남을까 따위의 '과학적 통계'에 저는 얼마나 위협당하고, 밥풀 하나라도 남길 때마다, 또 코를 풀 때마다, 산더미 같은 쌀, 산더미 같은 펄프를 낭비한 것 같은 착각에 고민하며, 제가 지금 중대한 죄를 저지르고 있는 듯한 어두운 기분이 되었는데,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과학의 거짓' '통계의 거짓' '수학의 거짓'으로 세 톨의 밥풀은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곱셈 나눗셈의 응용문제로서도, 참으로 원시적이고 저능한 테마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변소 구멍에 사람은 몇 번에 한 번 한쪽 발을 헛디뎌 떨어질까, 또는 전차 출입구와 플랫폼 사이의 구멍에, 승객 몇 명 중에 몇 명이 발을 빠뜨릴까, 그런 확률을 계산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어리석고, 그것은 자못 있을 수 있는 일 같으면서도 변소 구멍에 발을 헛디뎌 다쳤다는 예는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설을 '과학적 사실'로 배우고, 그것을 완전히 현실로 받아들여, 두려워하던 어제까지의 저를 귀엽게 여기며 웃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저는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pp.114-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