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투자자의 위험성향은 왜?
* 기본적인 관점: 섣불리 민족성으로 돌리는 오류를 조심하고,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잘 살펴야 할 것
* 영상한국사
시기별로 자료를 정리해 두었군요! 역덕들에게 추천!
I.우리 역사의 형성과 고대 국가의 발전
II.고려 귀족 사회의 형성과 변천
III.조선 유교 사회의 성립과 변화
IV.국제 질서의 변동과 근대 국가 수립 운동
V.일제 강점과 민족 운동의 전개
VI.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세계의 변화
한국인들의 투기적 투자, 그 짧지않은 역사
(KBS_2012.02.23.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FKhVJjlsnPg
한국인들이 투기에 가까운 고위험 투자에 열광했던 역사는 제법 길다.
이미 130년 전에 미두 투기에 열광했다는 기록이 있다. 미두는 글자 그대로 쌀과 콩을 말한다. 1896년 설립된 인천 미두취인소에선 현물없이 일정기간을 두고 쌀과 콩의 거래가 가능했다. 오늘날 선물거래와 유사하다. 미두취인소는 쌀 가격의 안정과 쌀 매매에 있어서 지나친 경쟁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장되었지만 곧 그 기능이 변질되고 만다.
명목상으로는 쌀 공정거래 시장이었지만 실제로 쌀은 거의 거래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단지 미래의 쌀 가격을 예측해서 사고 팔았다. 쌀값의 10%만 있으면 거래에 참여할 수 있어 적은 돈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미두거래소는 대박을 노리는 미두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KBS역사스페셜 – 식민지 조선 황금광(狂)시대
신역사스페셜 56회 – 식민지 조선의 황금광 시대 (2011.1.20.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d8AtlOvbnRI
* 식민지 조선, 황금을 쫓는 사람들.
1930년대 금광개발 열풍에 힘입어 금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1932년까지 10톤을 넘지 않던 금 생산량이 1939년에는 31톤으로 조선은 세계 여섯 번째 금 생산국
* 골드러시, 왜 1930년대인가?
1929년 대공황 뒤 국제시장에는 환율제와 금본위제가 공존
불안한 환율을 버리고 금본위제를 선택한 일본은 황금확보에 혈안이 되고 전쟁 준비를 위해 황금수요는 더더욱 높아진다. 금광 탐사와 개발에 지원금을 쏟아 붓고 시중의 금을 비싸게 매입하기 시작한 일본에게 조선은 언제나 준비돼있는 황금인출기였다.
또한 1931년 한반도는 유례없는 풍년으로 시장에 쌀이 넘쳐 가격이 폭락한다. 생활이 어려워진 농민들은 농토를 갈아엎고 산을 헤맨다. 금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북 지역의 운산, 대유동, 삼성, 교동, 남한의 직산, 구봉 등 대형 광산에서는 제련소와 항구 같은 연관 분야도 함께 발달하며 유랑 농민을 흡수했다.
* 맨주먹의 황금신화, 최창학
* 조선판 투기, 묻지 마 투자
* 물거품처럼 사라진 황금열풍
[단독]지난해 서학개미 파생상품 거래 1경원…수익은 마이너스 -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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